박상진 의사의 공적 재조명

최봉실 기자 | 기사입력 2019/08/26 [10:51]

박상진 의사의 공적 재조명

최봉실 기자 | 입력 : 2019/08/26 [10:51]

 2019822,국회의원회관 제 3세미나실에서 이상헌 의원 주최로 박상진의사 공적의 재조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고헌 박상진은 경상남도 울산에서 1884127일에 출생하였다.항리에서 한학을 배우다 1902년부터 의병장 출신의 서울 평리원판사 및 원장으로 재직하였던 허위 문하에서 수학하였다.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으나 식민지 관리가 되지 않겠다 하여 사퇴하고, 1911년 만주로 건너가 여러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독립투쟁의 방략을 모색하였다.1912년 귀국하여 대구에서 독립운동의 연락본부를 설립하여 국내를 비롯한 만주,장춘 등에 연락망을 구축하였다.

 

1915년에 대구에서 결성된 독립군 지원단체이자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 에 참여 및 활동하였고 같은 해 7월에는 대한광복회를 조직,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으며, 1916년 노백린 .김좌진 등을 대한광복회에 가입시켰다.

 

1916년 만주에서 무기구입 후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서 붙잡혀 6개월간의 옥고를 치뤘다. 출옥후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으며 친일파 부호의 처단을 수차례 계획하였는데, 이에 1917년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부호 장승원을 ,1918년에는 충청남도 아산 고도면 면장 박용하를 처단했다. 이때 대한광복회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1918년 봄에 체포되었다.

 

이후 대구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4년간 옥고를 치른뒤. 대구형무소에서 1921813일 순국하였다. 1960년 울산에 추모비가 건립되었으며 ,1963년 정부에서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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