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뉴스, 수어통역 제공해야

핑계 둘러대는 방송사

편집팀 | 기사입력 2020/06/04 [18:32]

주요 뉴스, 수어통역 제공해야

핑계 둘러대는 방송사

편집팀 | 입력 : 2020/06/04 [18:32]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이하 장애벽허물기)를 비롯한 장애인권단체들이 KBS에 대해 인권위 권고대로 9시 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함으로써 공영방송의 책임을 다하라며 2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지난 5월 중순, 지상파 3개 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 4월 말 결정된 권고를 전달한 바 있다. 방송사에 대해서는 저녁 종합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라는, 방통위에는 수어통역 의무비율를 현행 5%에서 상향조정하라는 내용이다.

 

장애벽허물기는 재작년부터 농인 시청자들이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저녁 종합뉴스에 수어통역을 제공하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지난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면서 수어도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성은 소외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당장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비율을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모든 보도프로그램에서 자막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으며, 현행 의무비율 5%를 준수하고 있으니 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또 방송사들은 수어통역을 늘리겠다는 약속 대신 별도의 수어통역 화면과 자막크기 조절기능을 갖춘 TV수상기, 스마트 수어방송 서비스를 개발·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더욱 문제가 되는 사실은 방송사들이 수어통역 화면이 청인의 시청권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는 "한정적인 화면에 동시 운영해야 할 시각적 정보들이 많아 수어통역방송을 한 화면에 같이 운용할 시 채널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기술적 요인을 들기도 했다.

 

이같은 주장에 인권위는 "비장애인들은 수어통역이 화면이나 자막을 일부 가려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청각장애인은 수어통역 없이는 자막이 있더라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진정을 제기한 장애단체의 편에 섰다.

하지만 인권위의 권고에도 방송사들은 여전히 부동자세다. 요구를 계속해온 장애단체들 사이에서 또한 '방송사들은 권고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이에 장애벽허물기 외 5개의 장애단체들은 KBS 본관 앞에 모여 "공영방송의 의무를 다하라"고 외쳤다. KBS는 국민의 수신료를 운영 재원으로 삼는 만큼 청각장애인에도 평등한 시청권을 보장해야 하며, 방송 문화를 선도하는 공영방송으로서 해당 문제에 대해 더욱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날 회견에는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 여러가지수어연구소 강재희 대표, UN장애인권리협약이행연대 이영석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 원심회 청각장애인 당사자 회원 이OO 씨가 발언에 나섰다.

 

회견의 취지를 낭독한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는 "KBS는 (수어통역 화면이)청인 시청자에게 방해가 된다, 제작비가 없다, UHD방송이 안착되면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미뤄왔다. 하지만 이번 인권위 결정문을 통해 본 결과, 결국 문제는 KBS가 수어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방송사를 규탄했다.

 

여러가지수어연구소 강재희 대표는 "저는 농인입니다. 저에게 수어는 소중한 언어이지만 아직도 의사소통 보조수단으로 생각해 농인의 접근권을 제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발언을 열었다. 실제로 방송사들은 자막을 제공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음성언어가 아닌 수어를 제1언어로 하는 농인들은 음성언어 체계에 따른 자막을 빠르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에서 이른 아침에 상경했다는 이OO 씨 또한 "꿈속에서도 수어로 대화하다보니 자막으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면 답답함이 많다"면서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어 강 대표는 "우리나라 헌법 11조에 '누구든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면서 "농인들이 수어로 방송을 볼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헌법을 어기는 일"이라고 KBS에 실질적인 움직임을 요구했다. 더불어 "수어통역 화면이 청인들의 시청권을 해친다는 의견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확실한 데이터를 내놓아라"며 방송사의 주장이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꼬집었다.

 

권리협약이행연대 이영석 활동가는 1년이 지나도 방송사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아 회견을 거듭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헌법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기본으로 하고, UN장애인권리협약과 같은 국제인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간으로 한다"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청각장애인을 장애 여부와 관계 없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국민, 시청자로 대우하라고 요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KBS가) 작년에 이어 올해는 코로나 핑계로 면담을 거부했다. 시청자의 질문에 응답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할 책임을 등한시 하면서 말로만 시청자가 주인이라고 한다"고 문제 제기를 회피하려고만 하는 태도를 지적했다. 

 

이어 "방송사들이 스마트 기술을 이용해 농인과 청인의 화면을 분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회통합적 측면으로도 옳지 않은 처사"라고 비판했다. 해외 방송사들이 장애인을 비롯해 다양한 사회약자들의 모습을 방송에 노출시켜 그들을 사회의 일부로 인식하게 하는 것처럼, 수어도 국민의 일상에 녹아들도록 공영방송 측에서 인식 개선에 나서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발언을 마친 이들은 KBS에 대해 저녁 종합뉴스에 수어통역을 하루빨리 제공하라고 다함께 구호를 외쳤다. 회견은 장애벽허물기 김주현 대표가 KBS측에 요청서를 전달하며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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