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보이스 가이'

장애인 번역가가 함께 번역

신길남 기자 | 기사입력 2023/02/03 [14:37]

'로스트 보이스 가이'

장애인 번역가가 함께 번역

신길남 기자 | 입력 : 2023/02/03 [14:37]

코미디언 에세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책덕 출판사가 ‘로스트 보이스 가이: 말 못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말문 막히는 장애 개그’를 출간했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는 2018년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자 리 리들리가 쓴 책이다.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뇌성마비로 언어 장애가 생겨 말을 할 수 없게 된 리 리들리는 아이패드의 전자 음성을 빌려 코미디 공연을 펼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저장된 문장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항상 기다릴 가치가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첫 오디션에서 그는 ‘장애인이 개그를 한다는데 웃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거예요!’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던지며, 그야말로 신선하고 과감한 ‘장애 개그’를 선보였다. 그 순간 시청자들은 그의 해맑은 미소와 개그 스타일에 열광했으니 어쩌면 첫 등장부터 ‘브리튼스 갓 탤런트’ 우승은 이미 결과가 나와 있던 것이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에는 시각 장애인 친구와 짓궂은 장난을 친 에피소드, 장애가 있는 말을 타고 승마를 배워야 했던 에피소드같이 저자의 장애 인생에서 쌓인 소소한 이야기부터 난생처음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대학교 기숙사 생활에 적응해가는 성장 스토리까지 담겨있다. 크고 작은 웃음이 가득한 책이지만, 장애에 대한 부족한 사회 인식을 꼬집는 매운맛 독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패럴림픽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알 수 있는 장애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비꼬기도 하고, 한참 부족한 돌봄 서비스에 대한 소신 있는 발언도 담겨있다.

각 장 끝에는 사람들이 장애인을 만났을 때 대뜸 던지는 ‘너무 자주 묻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해놓았다. 예를 들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나요?”, “섹스할 수 있나요?”, “스티븐 호킹만큼 똑똑하신가요?” 같은 질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리 리들리식 공공 서비스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저자뿐만 아니라 번역가들에게도 있다. 2019년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우리동작)의 중증 장애인 번역가 양성 과정에서 다섯 명으로 이뤄진 번역팀이 꾸려져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다른 비장애인 번역가가 아니라 장애인 번역가들이 기획하고 번역한 작업물을 함께 다듬어가며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는 우여곡절을 거쳐 책이 출판됐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참여한 만큼 책을 만드는 데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2022년 9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830만4000원의 후원금을 모았고, 2023년을 맞이하며 드디어 로스트 보이스 가이의 책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었다.

장애인 코미디언의 책을 다양한 장애를 지닌 번역가들이 번역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이 생겼다. 번역가들은 리 리들리의 글에 각자의 방식으로 공감하며 재밌게 책을 번역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손길이 담긴 책인 만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 다채로운 화학 작용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만의 고민과 어려움을 극복하며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살아가는 리 리들리의 이야기는 굳어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장애인을 바라보던 우리의 가난한 상상력을 확장시켜 준다. 로스트 보이스 가이는 ‘장애 개그’라는 말이 불편한 독자들에게, 웃음으로 편견의 벽을 허물어주는,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로의 초대장이 되어줄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사랑의 후원금
사랑의 후원금 자세히 보기
사랑의 후원금 후원양식 다운로드
사랑의 후원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