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통합교육의 문제점과 실현방향

부분통합에서 완전통합으로

이병화 | 기사입력 2018/09/16 [22:28]

장애인 통합교육의 문제점과 실현방향

부분통합에서 완전통합으로

이병화 | 입력 : 2018/09/16 [22:28]

 

장애아동과 장애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동일 연령층의 평균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어 일반적인 교육방식이나 프로그램으로는 소기의 교육목표 달성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장애특성에 적합한 교육환경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때 교육환경이란 교사, 교육장소, 교육방법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아동에 대해 특수교육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데 이 법에는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특수교육 서비스란 교육대상자의 교육을 효율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상담지원, 가족지원, 보조공학 기기 지원, 통합지원 및 정보접근 지원 등이다. 

 

한국의 장애아 교육

 

고려시대에 풍수학을 가르치던 서운관에 시각장애인들이 관직을 제수받았다는 기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특수교육이 실시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에서 시각장애인에게 교육을 실시했다. 15세기 조선의 세종 때부터 실시되었던 시각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1895년에 폐지되었다. 1882년 대조선국과 미국이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미국의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기독교사상을 이식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1890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시각장애 아동과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특수교육이 시작되었다. 1900년 평양에 설립된 정진여자학교에 여자 시각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급이 설치되었고 1908년에 평양여맹학교로 독립하고 1909년에 평양맹아학교로 개칭했다. 

1903년에는 평양에 남자 시각장애아를 가르치는 학교가 설립되었다. 당시의 교육 수혜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지만 당시 시각장애아들은 미국 선교사가 고안한 한글점자로 교육받았고 일반학교 내에 병설된 특수학급의 형태로 통합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시각장애아보다 청각장애아를 먼저 교육시킨데 반해 우리나라는 시각장애아에 대한 교육이 먼저 시행되었다.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불법 강제로 병합하고 난 뒤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1911년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재단법인 제생원을 설립했다. 제생원의 주요 사업은 고아의 양육,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구제 그리고 시각장애아와 청각장애아에 대한 교육 등이었다. 장애아에 대한 교육은 점자교육, 침술과 안마, 수화를 가르쳤다. 

일제강점기에 장애아 교육에 있어서 눈여겨볼 만한 업적이 나왔는데 그것은 당시 제생원의 교사였던 박두성(1888 ~ 1963)의 한글점자 창안이다. 박두성은 일본어점자로만 교육하던 불합리에 반발하면서 조선인 졸업생들과 함께 조선어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한글점자를 만드는 일에 진력했다. 1926년 11월 박두성은 6점으로 된 한글점자를 고안해 공포했다. 이것이 훈맹정음인데 이 한글점자는 국제점자학계로부터 공인받았다. 

일제강점기 시기에는 장애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나 부모의 이해가 부족해 장애아에 대한 특수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시도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와같이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특수학교를 설립했다. 

1935년 이창호 목사는 평양광명맹아학교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조선인이 설립한 최초의 특수교육 기관이었다. 이학교는 1903년에 설립된 남자 맹아학교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이창호 목사가 인수하고 학교건물을 평양 숭실학교로 옮겼던 것이다. 이 학교는 일반 교과과목 외에 직업교육 과목을 가르쳤다. 시각장애아에게는 점잘, 청각장애아에게는 수화로 목공, 양재, 안마, 마사지 등을 가르쳤다. 

 

1937년 서울 동대문국민학교에 병허약아를 위한 양호학급이 개설되었다. 이 학교는 4년간 교육을 실시했는데 학급당 정원이 50 명이었고 6개월 이상 생활구제가 필요한 아동을 대상으로 했다. 1938년에는 제생원 졸업생인 손영수가 원산맹학교를 설립했다. 

1945년 우리민족은 일제의 지배를 벗어났지만 미군정을 맞이해 우리민족 자체로 교육체제나 교육목표를 설정하는 기회가 없었다.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하면서 민주국가의 건설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고 법적으로 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1949년 교육법을 제정 공포하면서 본격적인 민주시민 교육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1945년 제생원 맹아부가 국립맹아학교로 명칭을 변경하고 학급을 재편성하고 학제를 강화했다. 

국립맹아학교는 1947년 9월 5년제 중학교를 설치했다. 이것이 한국 중등 특수교육기관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가서 부산과 제주에서 수업을 실시했고 1952년 서울맹아학교로 개칭한 후 1953년에 서울로 돌아왔다. 1960년에는 서울맹아학교를 서울맹학교와 서울농학교로 분리했다. 1964년 고등부를 개설함으로써 장애학생을 위한 고등학교 과정의 특수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1945년이후 1960년 대 말까지 설립된 특수학교는 33 개교였는데 이 중 26 개 학교가 맹아 또는 농아학교였고 4 개 학교가 지체장애아 학교, 3 개교가 정신지체장애아 학교였다 

1960년 대 말까지 한국의 특수교육은 민간인 독지가나 선각자들이 설립한 사립학교에 의해 주도되었다. 

 

광복 이후 최초의 사립 특수학교는 댁 맹아학원이다. 이 학교는 1946년 이영식 목사가 설립했다. 

한국에서 정신지체장애아 교육이 실시된 것은 1963년 농학교였던 한국구화학교에 정신지체장애아 학급이 병설되면서였다. 이 학급이 학교로 독립된 하교가 바로 1966년에 개교한 대구보명학교였다. 

1963년 부산시교육위원회에서 중증장애로 취학이 어려운 재가 장애아동의 학습을 위해 가정방문제 특수학급을 개설했다. 이것이 최초의 지체장애아에 대한 순회방문 교육의 시도였다. 

특수교육이 활성화된 시기는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부터였다. 이 때부터 국가의 책임 하에 국공립 특수학교가 증설되었다. 최초의 정신지체아 특수학금이 1971년 댁 칠성국민학교에 개설되었다. 그 이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특수학급이 늘어났고 약시학급, 난청학급도 개설되었꼬 지체부자유 장애아를 위한 순회방문 학급도 설치 운영되고 있다. 

1994년 제정된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아의 통합교육 실시에 필요한 터전을 마련했다. 장애아의 학교배치 순서를 1)일반학교의 일반학급, 2)일반학교의 특수학급, 3)특수학교의 순으로 결정하되 일반학급에서 장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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